똑같은 당이 아니다?: 지방간을 만드는 두 가지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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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 한 팩을 꺼내 마십니다. '콜라도 아니고, 과일주스인데 괜찮겠지' 생각합니다.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소견을 듣고 오시는 분들 중 상당수는 술을 즐기는 분들이 아닙니다. 대신 이런 음료나 디저트는 매일 챙겨 드신 경우가 많습니다.
지방간의 원인을 술이나 기름진 음식에서만 찾다 보면, 정작 매일 마신 주스 한 팩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지방간, 왜 술을 안 마셔도 생길까요?
- 포도당과 과당, 간으로 가는 길이 다릅니다
- 단 음료가 알코올과 비슷하게 간을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진료실에서 지방간 환자분들께 가장 먼저 여쭤보는 것
- 이번 주, 마시는 음료 한 가지만 바꿔봅니다
지방간, 왜 술을 안 마셔도 생길까요?
지방간이라고 하면 대부분 음주나 기름진 식사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소견을 받는 사람들 중 다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해당합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술과 무관하게, 탄수화물과 과당을 과하게 섭취했을 때 간에 지방이 쌓이면서 생깁니다. 밥을 적게 먹어도 단 음료나 디저트를 자주 찾는다면 해당될 수 있습니다.
즉 지방간의 시작점은 술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이 가는 단 음료 쪽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당이라도 도착지가 다르면, 간이 떠안는 부담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포도당과 과당, 간으로 가는 길이 다릅니다
밥이나 빵에서 나오는 '포도당'은 온몸의 근육과 세포가 나누어 에너지로 씁니다. 반면 설탕과 액상과당에 많이 들어있는 '과당'은 근육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간으로만 향합니다.
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면, 남은 과당은 '중성지방'으로 바뀌어 간세포 안에 쌓입니다. 이것이 지방간이 만들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경로입니다.
앞서 꺼냈던 오렌지주스 한 팩에도 과당이 상당량 들어 있습니다. 매일 마시는 습관이라면, 매일 간에 지방을 조금씩 더 쌓아온 셈입니다.
단 음료가 알코올과 비슷하게 간을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 음식이나 음료를 자주 먹으면 혈당이 반복해서 오르내리고, 그 과정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기 쉽습니다.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간이 지방을 처리하는 능력 자체가 떨어져, 지방간이 더 쉽게 악화되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만성 스트레스도 영향을 줍니다. 코르티솔이 혈당을 끌어올리고 인슐린 저항성을 심화시켜, 간에 지방이 쌓이는 흐름을 거들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경로가 알코올성 지방간과 상당히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알코올은 간에서 독성 물질로 분해되며 간세포를 직접 손상시키는데, 과당 역시 간에서 비슷한 경로를 거쳐 지방간, 나아가 간경화나 간암 위험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지방간 환자분들께 가장 먼저 여쭤보는 것
저는 지방간 소견으로 오신 분들께 음주 여부보다 먼저 여쭤봅니다. 하루에 커피는 몇 잔을 마시는지, 그 커피에 시럽이나 믹스를 얼마나 넣는지, 물 대신 마시는 음료가 따로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의외로 답은 거의 비슷합니다. 술자리는 한 달에 한두 번뿐인데, 믹스커피와 주스, 탄산음료는 매일입니다. 간이 매일 처리해야 하는 당의 총량으로 보면, 오히려 이쪽이 간에는 더 꾸준한 부담일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마시는 음료 한 가지만 바꿔봅니다
이번 주에는 마시는 음료 중 하나만 물이나 무가당 차로 바꿔봅니다. 커피믹스 한 잔이든 주스 한 팩이든, 하루 중 가장 습관적으로 손이 가는 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관찰할 것은 네 가지 정도입니다. 그 음료를 얼마나 자주 마셨는지, 바꾼 뒤 식후 더부룩함이나 몸이 무거운 느낌에 변화가 있는지, 아침에 붓는 느낌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 음료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입니다. 마지막 항목이 가장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작은 시도만으로 변화가 크지 않거나 이미 다른 불편증상이 함께 있다면, 전문가와 함께 확인해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지방간은 마른 사람에게는 생기지 않나요?
아닙니다. 체중이 정상이거나 마른 편이어도 단 음료나 정제 탄수화물 섭취가 많으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워 건강검진이나 초음파 검사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과일도 줄여야 하나요?
과일 자체와 과일주스는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일은 섬유질이 함께 들어 있어 흡수가 비교적 느리지만, 주스나 액상과당 음료는 당분만 빠르게 흡수됩니다. 일반적인 과일 섭취보다는 농축된 단 음료 쪽을 먼저 줄이는 것이 방향에 맞습니다. 다만 개인차가 있어 정확한 조절은 진료로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방간 수치는 어느 날 우연히 나빠진 것이 아니라, 매일 무심코 마신 음료 한 잔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 신호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